필립 글래스 & 파우치 사사키진정한 음악의 길

발행일 2018년clock리딩 시간: 2m5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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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계 페루인 작곡가 파우치 사사키(Pauchi Sasaki)는 휴머니티에서 영감을 받는 아방가르드 작곡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가 경험한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동지애를 느낍니다.

스티븐 트래셔 2018년 1월
  • 필립 글래스
    멘토
  • 파우치 사사키
    프로테제

멘토링 기간의 첫 몇 달 동안 일본계 페루인 작곡가 파우치 사사키는 80대의 고령에도 작곡가이자 연주자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필립 글래스와 일정을 맞추느라 바쁜 시간을 보냈습니다. 파우치 사사키는 먼저 페루에서 일본으로 날아가 피아니스트 나메카와 마키(Maki Namekawa)가 연주하는 필립 글래스의 ‘20개의 피아노 연습곡(20 Piano Etudes)’을 감상한 후, 암스테르담으로 건너가 1982년 작 영화 ‘코야니스카시(Koyaanisqatsi)’의 배경음악을 연주하는 필립 글래스 앙상블(Philip Glass Ensemble)의 음악회에 참석했습니다.

멘토링이 제대로 꽃을 피운 것은 필립 글래스가 수십 년간 맨해튼을 주 무대로 활동해 온 뉴욕시에서였습니다. 파우치 사사키는 "대화를 나누다가, 차를 마시다가 혹은 필립 글래스 선생님이 샌드위치를 만들어 주시다가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시작되곤 했죠"라며, 이 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고 말합니다. 필립 글래스는 11개의 교향곡, 20편 이상의 오페라, 협주곡, 영화 음악, 현악 4중주, 피아노 및 오르간 독주곡 등을 작곡한 바 있습니다. 파우치 사사키는 무용단을 위한 음악과 영화 음악을 작곡할 뿐 아니라, 입을 수 있으면서 음향 장치이기도 한 놀라운 시각 예술 작품을 제작합니다. 파우치 사사키는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는 대신, 필립 글래스와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기회를 택했습니다.

선선한 어느 가을 저녁, 필립 글래스는 그 자신도 연주자로서 여러 번 섰던 공연장 더 키친(The Kitchen)의 청중석에 앉았습니다. 플루티스트 클레어 체이스(Claire Chase)가 본인이 부탁한 여러 음악가들과 함께 연주를 하고, 마지막 순서로 아주 독특한 드레스를 입은 채 붉은 조명을 받으며 무대 위에 섰습니다. 파우치 사사키가 흰색 소형 스피커 200개를 사용해 만든 드레스입니다.

클레어 체이스는 파우치 사사키가 작곡한 ‘가마 XV: 두 벌의 스피커 드레스를 위한 작품(GAMA XV: Piece for Two Speaker Dresses)’을 작곡자와 함께 연주했습니다. 개조된 바이올린을 든 파우치 사사키 역시 검은색 스피커로 제작된 드레스를 입고 있었습니다. 바이올린과 플루트의 듀엣은 두 드레스를 통해 울려 퍼지며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신비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파우치 사사키와 필립 글래스의 음악은 청중으로 하여금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필립 글래스가 세련되고 다층적이며 때로는 날카로운 반복 구조를 통해 시간을 자유자재로 다룬다면, 파우치 사사키의 음악은 보다 자유롭고 나른하며 쉽게 잊혀지지 않습니다.

한 달 뒤, 파우치 사사키는 필립 글래스의 80번째 생일을 맞아 카네기 홀(Carnegie Hall)에서 초연되는 그의 작품 두 개를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Dennis Russell Davies)의 지휘하에 ‘호시냐의 낮과 밤(Days and Nights in Rocinha)’이 요루바어로 노래하는 안젤리크 키조(Angélique Kidjo)의 협연으로 뉴욕에서 초연되었고, 교향곡 제11번(Symphony No. 11)이 세계 초연되었습니다. 대규모 관현악 작품인 교향곡 제11번의 스타카토와 같은 리듬은 필립 글래스의 초기 실내악곡인 ‘12부의 음악(Music in Twelve Parts)을 연상시킵니다. 멘토의 작품이 카네기 홀에서 초연되는 것을 본 것은 파우치 사사키에게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파우치 사사키의 ‘관현악과 전자악기를 위한 가마 XVI (GAMA XVI for Orchestra and Electronics)’가 2017년 말 바로 같은 장소에서 초연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듬해 어느 더운 여름날 오후, 필립 글래스는 자신의 맨해튼 자택에서 파우치 사사키를 반갑게 맞이합니다. 주방의 긴 나무 테이블에서 유리 머그잔에 스피어민트 차를 따라 내놓는 필립 글래스에게 파우치 사사키는 들뜬 모습으로 자신의 출판사를 설립한 법인 서류를 보여줍니다. 항상 작곡가들이 자신만의 작품을 출판하도록 지도하고 격려해온 필립 글래스는 기쁜 모습을 감추지 못합니다.

이 시간은 롤렉스가 주관하는 멘토링 프로그램의 마지막 공식 만남이지만, 필립 글래스는 이후로도 비공식적인 멘토링을 이어가기로 약속했습니다.

필립 글래스와 파우치 사사키가 나누는 수많은 대화의 주제 중 하나는 LA와 뉴욕에서 사는 것에 대한 장단점입니다. 할리우드의 영화 음악 작곡가들은 함께 일하기 좋은 사람들이라고 필립 글래스는 말합니다.

"이유를 말해주지요. 저는 ‘디 아워스(The Hours)’, ‘노트 온 스캔들(Notes on a Scandal)’,‘쿤둔(Kundun)’으로 오스카(Oscar) 수상 후보에 오른 적이 몇 번 있어요. 매년 오스카 시상식 전날이 되면 수상 후보들을 위한 파티가 열리지요." 필립 글래스를 기쁘게 한 것은 수십 명의 작곡가들 앞에서 일어나 건배사를 외친 사람이었습니다. "필립 글래스, 축하합니다. 그거 아세요? 내년에는 우리가 그 자리에 있을 거예요." 바로 그런 자세가 중요하다고 필립 글래스는 설명합니다. "올해는 당신의 해, 내년은 나의 해라는 겁니다. 그다음 해는? 누가 알겠어요?"

필립 글래스는 동료 영화 음악 작곡가들과 함께 있는 시간을 즐기며, 그들의 곡이 담긴 영화를 제작한 감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우디 앨런(Woody Allen) 감독과 ‘카산드라 드림(Cassandra’s Dream)’ 작품을 함께한 시간은 꿈같았어요.” 필립 글래스는 이어 말합니다.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 감독과 함께한 '쿤둔' 작품은 너무나 힘들었어요. 하지만, 자기의 의도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똑똑한 사람이었죠." 필립 글래스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음악이 어떻게 조명되는지 그리고 등장인물과 어떤 상호 작용을 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경험이 많지 않은 감독들은 방어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다고 필립 글래스는 경고합니다. 30편이 넘는 장단편 영화의 배경 음악을 작곡한 바 있는 파우치 사사키도 그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음악은 나와 타인 사이의 교감입니다. 교감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죠.

"또 다른 이야기가 생각났어요." 필립 글래스가 미소를 짓습니다. "LA의 거리를 걷다 어떤 사람과 마주쳤어요. 영화를 찍다가 해고되어 매우 속상한 상태더군요." 필립 글래스는 그를 다독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도 항상 겪는 일이에요. 잊어버려요."

필립 글래스는 파우치 사사키에게도 혹시 해고를 당하게 된다 해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조언합니다. "편집에 뭔가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해봅시다. 제작사에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작곡가를 해고하는 겁니다.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해결책이니까요. 처음부터 모든 장면을 다시 촬영하는 것보다는 비용이 적게 들거든요."

작곡가로서의 시간 관리가 주제가 되자 필립 글래스는 말합니다. "우리는 늘 음악과 함께 하고 있어요." 그는 젊은 시절, 네 시간 단위로 시간을 관리했습니다. "때때로 밤에 영감이 떠오를 때면, '일어나면 안 돼. 곡을 쓰는 건 아침이야.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오는 법이니까'라고 말하곤 했어요."

“최근에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면 일어나 아래층에 내려가 한동안 곡을 써요. 75살이 되자, 이젠 원하면 언제든 곡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죠. 습관의 변화에 대비해야 해요. 습관이란 알 수 없는 이유로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어떤 일이 일어나면, 평소와 다른 방식으로 일해보세요. 그런 방식이 스스로를 배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작곡가로서 '유레카!'를 외친 순간이 있나요?" '이게 바로 필립 글래스의 음악이야.'라고 느끼신 순간이요." 파우치 사사키가 묻습니다.

필립 글래스는 1960년대 파리에서 풀브라이트(Fulbright)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했던 시절을 회상합니다. 우연히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와 같은 동네에서 살게 되었는데, 필립 글래스가 속한 예술가 그룹이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을 위해 음악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몇 년 동안 9개의 작품을 만들었어요. 사무엘 베케트를 위해 곡을 쓰던 그 때가 바로 '이것이 내 음악이구나'라고 생각했던 시기지요."

"그래서 영화 음악을 잘 쓰시는 거군요. 선생님의 음악은 극장에서의 대화로 탄생한 거니까요!" 파우치 사사키가 마치 자신만의 유레카를 발견한 듯 환한 얼굴로 말합니다. "이제 이해가 되네요."

필립 글래스는 사무엘 베케트가 소위 말하는 '잘라내기' 기법을 사용했다고 말합니다. 이 기법은 등장 인물들의 이야기가 나뉘어 비선형적으로 제시되는 것으로, 이를테면 셰익스피어(Shakespeare)의 작품에서처럼 등장 인물들의 '깨달음'이 예상할 수 있는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작품을 듣고 있었는데, '깨달음'이 다른 장소에서 일어나는 겁니다. '이게 뭐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깨달았죠. '깨달음'은 연극과 나의 상호 작용에 달려 있다는 사실이었고, '깨달음'이 오는 순간은 매일 밤 달랐습니다." 필립 글래스는 이를 통해 작곡가 존 케이지(John Cage)를 떠올렸습니다. 존 케이지는 '음악을 완성하는 것은 청중'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인지 그때까지는 이해가 되지 않았어요." 그는 이어 말합니다. "사무엘 베케트와 함께 작업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어요. 저와 제 감정이 연극을 완성시키고 있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선생님의 음악이 지닌 감정의 결이 다른 작곡가들과는 다른가 봐요." 파우치 사사키가 말합니다. "다른 작곡가들은 음악을 음악으로만 접근하니까요. 저는 선생님과 더 비슷한 것 같아요. 저희가 음악에 접근하는 방식은..."

"...다른 것들을 통해서 접근하죠." 필립 글래스가 파우치 사사키의 말을 맺어줍니다.

"다른 것들을 통해서요."라며 파우치 사사키가 되풀이합니다.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과 장 콕토(Jean Cocteau)의 영화 음악 작업을 마친 필립 글래스가 말합니다. "순수하게 감상하기 위한 작품들을 썼어요. 듣는 사람이 느껴야 하는 감정을 요구하지 않았어요. 듣는 사람이 찾아내서 음악을 완성시킬 거라는 게 저의 생각이었습니다. 음악은 아무 것도 의도하지 않아요. 단지, 의미 있을 뿐이죠. 의미가 있다는 것은 여러 가지 의미를 담고 있지만, 그 의미가 무엇인지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청중은 음악을 완성시킵니다.

"제 지도를 보여주고 싶어요." 파우치 사사키가 말합니다. 시각적으로 화려한 ‘가마 XVI’의 악보에는 그녀가 구상하는 차후 공연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지도가 좋군요. 좋은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필립 글래스가 깊은 눈으로 그림을 천천히 살펴보며 말합니다. "밥 윌슨(Bob Wilson)과 함께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을 만들었을 때, 이런 방식으로 작업했던 게 기억나요."

파우치 사사키는 떠나기 전, 필립 글래스와 나란히 손의 사진을 찍어도 될지 물어봅니다. 나무 테이블 위에 커다란 80대의 손이 그에 비해 훨씬 작아 보이는 손 옆에 얹어집니다. "저는 손이 좋아요. 삶의 여정을 보여주니까요. 제 손을 보고 선생님 손과 비교하는 것은 선생님이 제게 가르치신 거예요. 제가 가르침을 기억할 수 있게 하는 상징과도 같아요." 파우치 사사키는 필립 글래스의 멘토링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우리는 또 만날 거예요." 필립 글래스는 웃으며 답합니다. "음악가의 삶보다 더 치열한 사회적 관계는 없어요. 우리는 언제나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지요. 음악은 나와 타인 사이의 교감입니다. 교감이 없다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죠."

필립 글래스는 멘토링에 대해 "선배 작곡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라고 말합니다.

파우치 사사키가 말합니다. "저도 나이가 들면 선생님처럼 행동할 거예요. 약속해요."

"믿어 의심치 않아요."

스티븐 트래셔(Steven Thrasher)는 미국 가디언(Guardian)의 프리랜서 작가입니다. 뉴욕 타임즈(New York Times), 빌리지 보이스(Village Voice), 롤링스톤(Rolling Stone) 등에 기고한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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